[단독]“나에게 유모는 30년간 친어머니… 아들이 내 뜻 이해해주길”
입력2023.12.13. 오전 3:01
수정2023.12.13. 오전 7:09
“저에겐 친어머니 같았고, 아이들에겐 친할머니나 다름없었습니다. 30여 년 동안 한 가족처럼 지냈는데….”
어릴 적 유모였던 90대 여성 편에서 자신의 친아들과 법정에서 다퉜던 정모 씨(71)는 1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요즘 매주 세 번씩 신장 투석을 한다는 정 씨의 목소리는 회한에 잠긴 듯 가라앉아 있었다.
정 씨의 아들은 정 씨가 유모 박모 씨(95)를 위해 9년 전 매입해준 서울 성동구 오피스텔에서 나가 달라며 박 씨를 상대로 건물인도 소송을 냈다. 자신의 명의로 된 오피스텔을 처분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을 맡았던 서울동부지법은 지난달 28일 박 씨의 손을 들어줬다.
정 씨의 어머니는 1981년 숨졌지만 박 씨와의 인연은 이어졌다. 박 씨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정 씨 집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집안일을 하고 정 씨의 큰딸과 두 아들을 챙겼다고 한다. 정 씨는 “아이들이 ‘할머니’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며 “요리 솜씨도 일품이었는데 특히 갈치 요리를 다들 좋아했다”고 했다.
정 씨의 사업이 어려워지며 박 씨에게 월급을 제대로 못 줄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박 씨는 싫은 내색 없이 30년 가까이 정 씨 가족과 한 지붕 아래서 지내며 집안일을 도왔다. 정 씨는 “연탄을 갈아 주고, 밥을 해 주고, 아이들을 매일 씻겨 줬다”며 “한 가족이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출가하자 박 씨도 2006년경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수도권 아파트로 독립해 나왔다고 한다.
이후 박 씨와 수년 동안 연락이 끊겼던 정 씨는 형편이 나아지면서 마음속에 남은 빚을 갚기 위해 박 씨를 수소문했다. 그때까지 혼자 살던 박 씨는 기초생활급여 수십만 원에 의존하면서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잇고 있었다고 한다. 청각장애 4급 진단을 받고 초기 치매 증상까지 생긴 상태였다. 정 씨의 큰딸은 박 씨의 집에서 함께 지내며 2013년까지 박 씨를 친할머니처럼 돌봤다.
소유권 말소 소송을 대리한 한병곤 변호사는 “정 씨가 지팡이를 짚고 신장 투석 치료를 받으러 다니면서도 1년 넘게 이어진 재판에서 박 씨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정 씨는 “박 씨가 세상을 떠나면 원래대로 아들에게 오피스텔을 넘기려고 한다”며 “언젠가 아들이 내 뜻을 이해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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