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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NYT "이게 다 트뤼도 때문이다"

2025.01.12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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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트뤼도 최악의 적은 바로 자신이었다"


미래가 밝아보였던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집권 초기, 한 기자가 그에게 왜 그의 내각의 50%가 여성인지 물었다. 트뤼도의 입에선 지금도 잘 알려진 대답이 나왔다. "2015년이니까요." 지난 6일 그가 총리직에서 사임하겠다고 발표한 이유를 알고 싶다면, 답은 간단하다. '2025년이니까요.'

트뤼도의 정치 경력은 지난 10년 동안 세계 진보 정치의 흐름을 추종했다. 낙관적이며 냉철한 자세에서 현재의 절망적인 상태로의 변화 말이다. 그의 임기 초기 '뉴욕 매거진'은 그를 의상을 입은 종이 인형 으로 묘사했는데 , 이는 적절해 보였다. 이제 그는 점점 더 마노스피어(반페미 사이트)의 농담의 대상이 돼버렸다 .

2015년 트뤼도는 새로운 종류의 정치의 최전선에 섰는데, 이는 그가 권력을 잡은 방식과 권력을 사용하기로 선택한 방식에서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는 소셜 미디어의 부상하는 힘을 활용하여 첫 선거에서 승리했다. 취임 후 중요 직위에 앉힌 사람들의 '성별과 민족성(다양성)'에 대해, 주어진 권력으로 향후 무엇을 할 것이라는 계획 만큼이나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정체성 정치는 현재의 몰락을 가져오는 데 적잖은 역할을 했고, 소셜 미디어 네트워크는 그에게 냉담해졌다.

트뤼도는 그대로였지만 그의 주변 시대가 바뀐 것이다. 그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악의 말은, 그가 새롭게 양극화된 세상의 현실에 직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무능은 처음 집권할 때부터 불거진 일이다.

그는 2015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캐나다에는 핵심 정체성도, 주류도 없다"며 "공유된 가치가 있다. 평등과 정의를 추구하려는, 개방성, 존중, 연민, 열심히 일하려는 의지. 이러한 자질이 우리를 최초의 탈내셔널리즘 국가로 만든다"고 했다.

그의 이러한 비전은 무척 현대적으로 보였고, 캐나다를 확장되는 문화 간, 경제적 교류의 개방적이고 국경 없는 세계로 이끌었다. 다만 그는 '탈내셔널리즘 국가'가 어떤 모습일지, 또는 그것이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 스스로 묻지 않았다.

그 용어 자체는 화려하게 들린다. 정치적으로 민족주의의 여러 광기를 제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가 이후의 국가'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트뤼도의 임기 동안 애국심은 상당히 감소했다. 오늘날 캐나다 국민의 34%만이 캐나다인인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2016년의 52%에서 감소한 수치다.

트뤼도의 포용적 비전의 실패는 문화 전쟁 이상이다. 강력한 캐나다 경제는 항상 잘 규제된 이민에 대한 광범위한, 초당적 지지에 의한 것이다. 숙련된 노동자 유입으로 작고 노령화된 인구를 보충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트뤼도 정부는 코로나 사태 이후 주택과 인프라 관리에 대한 명확한 계획 없이 매년 50만 명의 이민자를 유입하는 정책을 펼쳤고, 이는 재앙이었다 . 이민을 긍정적인 힘으로 믿는 그의 믿음은 그 한계에 대해 질문할 수 없을 만큼 순진했다. 그 결과, 이민자가 너무 많다고 믿는 캐나다인의 수가 지난 2년 동안만 30% 이상 증가했다.

가끔 트뤼도는 효과적인 정책 결정을 배제하고 선의를 과시하는 듯 보이는데, 이는 지난 10년 동안 퇴보한 진보 정치의 최악의 특징이다. 그의 재임 기간 '원주민 토지 인정 선언문(이 땅이 현재 주인과 관계 없이 원래 북미 원주민의 소유라는 선언문, aka 착한척)은 캐나다 전역에서 일반적인 관행이 되었지만 원주민의 평균 수명은 급락했다 . 선의 과시는 현재, 그리고 항상 캐나다인의 고통이며, 트뤼도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덧붙이고 싶다. 캐나다인들은 트뤼도를 싫어하면서 그들 스스로도 미워하게 됐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증오의 강도를 설명해준다.

캐나다인들은 10년마다 총리를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 하퍼 정부는 2015년에 잔혹하게 무너졌고, 폴 마틴이 이끄는 자유당 정부도 2006년에 마찬가지로 무너졌다. 그 전에는 브라이언 멀로니의 진보적 보수당 정부가 1993년 선거에서 의석 두 개를 제외하고 모두 잃는 사태가 있었다. 트뤼도의 사임은 전통일 뿐이다. 캐나다인들이 지도자의 봉사에 감사하는 방식은 가장 날카로운 부츠로 그들을 문 밖으로 내쫓는 것이다.

트뤼도는 어떤 의미에서 비극적인 인물이다. 한창 잘 나갈 때는 그의 외모적 매력을 사용해 심각하고 중요한 정책을 실행할 수 있었다.

트뤼도 정부는 집권 초기 아동 빈곤을 절반으로 줄이고, 마리화나와 사망 의료 지원을 합법화했으며, 아동 보육에 중요한 투자를 했다. 그러나 후반부는 위기로 점철됐다.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는 트럼프 1기 행정부와의 협상, 코로나, 인플레이션. 어떤 합리적인 평가에도 트뤼도 정부는 이 세 가지 모두를 기대대로 잘 처리했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 여파 속에서 권력을 잡은 지도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국민들에 의해) 거부당했다. 이는 이해되는 측면이 있지만 합당하다고는 할 수 없다.

얼마 안 됐지만 2025년은 맥락 속에서 사건에 대한 뉘앙스와 동정적인 이해에 전념하는 해가 아닌 듯하다. 그렇지만 동시에 두 가지 모두 사실일 수 있다. 트뤼도의 대의 정치는 '선의의 의도'라는 형태로 붕괴됐지만, 그는 캐나다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든 유산을 남겼다. 캐나다인들은 언젠가 그 이중성을 인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평가가 나오려면) 2035년까지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른다.

/스티븐 마치(캐나다 작가)



한 줄 요약 : 외모로 뜬 뒤 '겉멋 정치'(인도적이며 선의적이면 다 된다는 소녀감성 진보정치)로 캐나다를 망친 뒤 쫓겨나듯 사임. 잘 한 점도 있지만 재평가가 나오려면 최소 10년은 기다려보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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