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교육과 여성 인권을 위해 노력한 인물에 대한 한녀들의 평가

[ 趙東植 ]
1907년 3월 관립 한성한어학교, 1910년 1월 사립 기호학교 사범과를 졸업했다.
1908년 4월 동원여자의숙(東媛女子義塾)을 설립했다. 같은 해 6월에는 기호흥학회(畿湖興學會)를 조직해 사립기호학교를 설립하고, 스스로도 학생으로 입학해 자기완성에 힘썼다. 당시 동원여자의숙의 학생은 모두 11명이었으며, 학비는 전액 무료로 해서 주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국권회복을 꾀하는 데 교육의 중점을 두었다.
1909년 4월에는 동덕여자의숙과 병합하여 동덕여자의숙으로 새출발했으며, 그 뒤 생애를 마칠 때까지 동덕학원 건설에 헌신했다. 1912년에는 동덕여학교의 교장에 취임했는데, 심한 재정난으로 곤란에 처했을 때 손병희 · 이상재 · 이석구 등의 적극적인 협찬으로 교세를 바로잡아 발전했다.
해방 후 1950년 5월에는 동덕여자대학을 설립하여 학장에 취임했으며, 그 뒤 동덕학원 이사장으로 재임했다. 이 밖에도 성균관대학의 설립에 참여,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고, 상명여자대학 · 한성여자대학 · 덕성여자대학 · 성신여자대학 등의 이사로 활약했다.
그 뒤 대한교육연합회 회장을 비롯하여 문교재단연합회장, 중앙교육위원회 의장, 대한문교서적주식회사 사장, 한국인쇄주식회사 취체역 회장, 중앙학원 감사, 교육특별심의회 위원, 중앙교육연구소 운영위원장, 전국사립중등학교연합회 회장, 국립서울대학교평의회 부회장 등 수많은 요직을 맡아 우리나라 교육계의 발전을 위하여 크게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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